실업자의 심경은 그가 아니면 모른다. 아침에 뜨는 해도 보기 실코, 밤이 뜨는 달도 보기 실코, 모-든 색채 모-든 움직이는 물체, 아모리 조흔 소리라도 다- 듣기 실코, 도대체 사는 것이 실타. 집안에 잇스면 쳐다보고 바라다 보고, 무에 나올가 하고 기대리는 집안 식구가 가엽고, 밧글 나아보면 맛나는 사람마다 “요새 무얼하시우” 하는 말을 드르면 주둥이를 쥐여 박구 십고. 안석주 만문만화. 조선일보. 1934.2.9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대공항은 경성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식인 혹은 인텔리로 불린 대졸자 집단의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들은 흔히 '룸펜(Lumpen)'이라 불리곤 했는데, 룸펜은 부랑노동자, 거지 같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당시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취업하지 못했..
구보 박태원의 헤어스타일은 무척 독특하다. 윗머리, 옆머리는 덥수룩한데 앞머리는 바가지를 대고 자른 것처럼 일자를 고수하고 있다. 집에서 혼자 잘랐다거나 막 개업한 미용실에 가서 망했다는 사연이 아닌 이상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스타일이다. (헤어스타일뿐 아니라 안경도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모테라 불린 이 안경은 당시 경성에서 가장 유행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대모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것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거북이 등껍질 무늬를 볼 수 있다. 다만 대모테는 상당히 고가였으므로 실제 등껍질로 만들었다기보다는 대모테 스타일 안경테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기에도 그러하니, 모던보이들이 즐비하던 경성 기준에서도 이는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1931년 가을, 일본 유학을 마친 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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