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에선 영화를 활동사진이라 불렀다. 1903년, 한성전기회사는 빈터 야외에 옥양목(얇고 색깔이 매우 흰 천)을 걸어 스크린을 설치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모아 경성 최초로 활동사진을 상영했다. (지금의 동대문 종합시장 위치) 정식 영화관이 아니었기에 관객들은 땅바닥이나 목재더미에 앉아 영화를 봐야 했지만, 일요일과 비오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밤 8시부터 10시까지 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했고, 그 인기도 대단했다. 뜬금없이 한성전기회사가 영화를 상영한 이유는, 전차사업으로 나빴던 기업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당시 경성에선 전차로 인한 사고가 잦았고, 낯선 문물에 대한 거부감도 컸기 때문이다.
1920년대 후반, 집집마다 유성기(축음기) 한 대 씩 들여놨다 할 만큼 축음기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집에 구멍이 날 정도로 가난해도 축음기는 들여놓는다고 조롱을 받기도 했었다. 레코드판을 재생할 수 있는 축음기의 보급은 곧, 유행가가 탄생할 수 있는 토대가 갖춰줬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시 경성의 유행가는 주로 영화 주제가였는데, 프랑스 영화인 , 한국영화인 주제가가 가장 유행하던 노래였다. 다방, 카페, 가정집 등에서 흘러나온 이 노래들은 모던-걸, 모던-보이뿐 아니라 학생, 직장인, 아이들까지 즐겨 부르는 메가 히트 유행가였다.
실업자의 심경은 그가 아니면 모른다. 아침에 뜨는 해도 보기 실코, 밤이 뜨는 달도 보기 실코, 모-든 색채 모-든 움직이는 물체, 아모리 조흔 소리라도 다- 듣기 실코, 도대체 사는 것이 실타. 집안에 잇스면 쳐다보고 바라다 보고, 무에 나올가 하고 기대리는 집안 식구가 가엽고, 밧글 나아보면 맛나는 사람마다 “요새 무얼하시우” 하는 말을 드르면 주둥이를 쥐여 박구 십고. 안석주 만문만화. 조선일보. 1934.2.9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대공항은 경성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식인 혹은 인텔리로 불린 대졸자 집단의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들은 흔히 '룸펜(Lumpen)'이라 불리곤 했는데, 룸펜은 부랑노동자, 거지 같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당시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취업하지 못했..
1917년, 경성에 한강인도교가 생겼다. 전철만 다닐 수 있었던 철도교를 개량해 자동차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걸어서 한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생겼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자, 한강인도교는 순식간에 경성의 명소가 됐다. 낮엔 경성의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밤엔 화려하게 밝힌 한강인도교의 전등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강을 걸어서 건넜다가 돌아오는 산책 코스도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부적용도 있었다. 투신 자살을 하기 위해 한강인도교로 향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관광의 명소뿐 아니라 자살의 명소로서도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여담. 한강인도교는 6.25 전쟁 중 폭파된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3일만인 1950년 6월 27일, 대전으로 도망간 이승만은 "서울 시민 여러분, 안..
1920~30년대 경성엔 만문만화(漫文漫畵)라는 게 있었다. 시사만평의 할아버지급 정도라 할 수 있는데, 만평과 달리 만화와 만문(형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유로운 글)이 함께 있는 형식이었다. 만문만화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작한 인물은 석영 안석주였다. 그는 주로 사회비판적인 만화를 신문에 연재했었는데 1920년대 중반부터 일제가 언론 탄압을 강화하자, 시사만화를 그릴 수 없게 됐다. 결국 그는 탄압을 피하기 위해 직접적인 대사가 있는 만화를 포기하고 우회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의 만화를 고안해냈는데, 그것이 바로 만문만화다. 자연히 만문만화는 식민지 경성의 세태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예컨대 1931년 발표한 위 만문만화는 비싼 학비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음에도 수업료를..
1934년 경성엔 이란 잡지가 있었다. 성별이 여자임을 뜻하는 여성(女性)이 아니라 소리 성(聲)의 여성(女聲), 여자의 목소리란 뜻이다. 은 카페에서 일하던 여급들이 만든 잡지였다. 도회의 한 단면은 환락장의 색등(色燈)에 물들어 있다. 환락장이라 함은 카페·바 등을 칭함이요, 그곳에서 자기의 생을 구하기 위하여 심야를 백주로 알고, 힘에 부치는 노동을 하고 있는 여자들이 즉 여급이니, 세상은 이들을 가리켜 도색전사(桃色戰士)라 하며 심지어는 매소부(賣笑婦)와 동일한 선상에서 보려 한다. 그네들이 사회의 낙오자들이요, 타락의 암흑면에서 방황하는 일군(一群)이라고 하자, 그러나 그들도 인간인 것이며, 정신에 참됨이 없는 것도 아니요,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중략〉나도 부모를 봉양한다, 자녀를 교육시킨..
경성의 다방과 카페는 그 성격이 다르므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다방과 카페의 뉘앙스를 뒤집으면 그때와 비슷하다. 카페는 술을 팔았던 유흥공간이다. (지금의 룸살롱과 비슷) 투쟁을 잊고 이런 카페에 은신하여 에로를 핥는 그들의 생활은 그 얼마나 퇴폐적이며 환락적이며 도피적이며 환멸적인가? 신생활, 1932, 7 일본의 음란한 카페 문화가 그대로 경성에 들어온 것으로, 일본 거주지인 남촌에 최초의 카페가 생긴 후 경성 전역으로 확대됐다. 카페 여급은 술시중을 들었다. 매춘은 위법이었지만, 매춘 직전의 '에로 서비스'가 횡횡했다. (여급의 월급은 전적으로 손님 팁에 의존해야 했다) 다방은 차를 팔았던 문화공간이다. (서양의 살롱을 지향했다) 이 사회에서 그래도 이 땅의 예술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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