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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의 심경은 그가 아니면 모른다. 아침에 뜨는 해도 보기 실코, 밤이 뜨는 달도 보기 실코, 모-든 색채 모-든 움직이는 물체, 아모리 조흔 소리라도 다- 듣기 실코, 도대체 사는 것이 실타. 집안에 잇스면 쳐다보고 바라다 보고, 무에 나올가 하고 기대리는 집안 식구가 가엽고, 밧글 나아보면 맛나는 사람마다 “요새 무얼하시우” 하는 말을 드르면 주둥이를 쥐여 박구 십고.


안석주 만문만화. 조선일보. 1934.2.9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대공항은 경성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식인 혹은 인텔리로 불린 대졸자 집단의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들은 흔히 '룸펜(Lumpen)'이라 불리곤 했는데, 룸펜은 부랑노동자, 거지 같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당시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취업하지 못했고, 취업의 의지또한 잃어버린 지식인 계층을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실업 문제는 당시 20~30대를 보내던 많은 작가들의 고민거리였고, 이는 자연히 그들의 작품에 묻어나게 되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등을 실업 문제 혹은 실업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를 다룬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두 작품 모두 취직하지 못한 젊은 청년이 경성을 떠돌아다니며 보낸 하루의 우울과 고민을 잘 담고 있다).



P.S.


채만식이 1931년 2월에 쓴 글, '취직전선 이상있다'에 경성 실업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일화가 잘 나와있다. 아래는 그 전문.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 씨는 머리를 절절 흔들면서 신물이 나게 졸리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한다.  

 찾아온 사람은 그다지 가까운 친분도 없고 다만 우연한 기회에 한 번 만나보았을 뿐인 ㅇ씨다. 

 그 ㅇ 씨는 재래의 형식인 소개니 소개장이니 하는 것은 별로 없고, 그야말로 취직전의 첨단인 직접 담판을 하러 왔다.

 백 명이면 백 명, 천 명이면 천 명, 또는 만 명이면 만 명이라고 소개를 하여주고 스스로 채용도 하여서 그들이 업을 얻게 하였으면야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송 씨로도 그러할 힘은 도저히 없다. 

 그리하여 송 씨는 여러가지로 형편이 여의치 못함을 이야기하며 어려운 거절을 하였다. 그랬더니 그 ㅇ 씨 그날 밤으로 이불을 싸 짊어지고 송 씨 사택으로 찾아왔다. 

 직업을 얻기까지 혹은 얻어주기까지 먹여 살리라는 것이다. 

 너무도 첨단에 첨단적인 ㅇ 씨의 '취직' 전술에 벙벙하여진 송 씨는 그만 아무 말도 못하고 하는 대로 두었다. 사실 두어둘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날 밤이 지났다.

 밝는 날에는 가리라고 생각하였으나 도무지 그러한 눈치가 보이지 아니한다.

 하루가 지났다. 그래도 가지 아니한다. 그러면서 자꾸만 조른다. 

 이틀, 사흘...... 열흘이 되었다. 그래도 아니 간다. 열하루, 열이틀, 필경 보름이 되었다.

 보름이 되어서야 ㅇ 씨가 졌다. 할 수 없이 물러가고 말기는 하였으나 취직 전초전에 나선 한 용감한 투사라는 창을 주기에 아깝지 아니한 사람이다. 


채만식. 별건곤. 1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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