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다방과 카페는 그 성격이 다르므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다방과 카페의 뉘앙스를 뒤집으면 그때와 비슷하다. 카페는 술을 팔았던 유흥공간이다. (지금의 룸살롱과 비슷) 투쟁을 잊고 이런 카페에 은신하여 에로를 핥는 그들의 생활은 그 얼마나 퇴폐적이며 환락적이며 도피적이며 환멸적인가? 신생활, 1932, 7 일본의 음란한 카페 문화가 그대로 경성에 들어온 것으로, 일본 거주지인 남촌에 최초의 카페가 생긴 후 경성 전역으로 확대됐다. 카페 여급은 술시중을 들었다. 매춘은 위법이었지만, 매춘 직전의 '에로 서비스'가 횡횡했다. (여급의 월급은 전적으로 손님 팁에 의존해야 했다) 다방은 차를 팔았던 문화공간이다. (서양의 살롱을 지향했다) 이 사회에서 그래도 이 땅의 예술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지..
경성시가도, 1933 일제강점기 경성은 크게 북촌과 남촌으로 구분했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북촌)에는 조선인이, 남쪽(남촌)에는 일본인이 주로 살았던 것에서 유래됐다. 남촌에 일본인이 많이 살았던 이유는 남산 부근에 일본 공사관에 있었기 때문. 공사관 주변에 일본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며 거주지가 형성됐다. 일제는 자신들의 근거지인 남촌을 먼저 개발했다. 대표적인 건물은 미쓰코시 백화점과 조선저축은행. 혼마치(지금의 충무로)는 당시 가장 번화한 거리로 불렸다. 북촌은 개발에서 배제되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의 민족 차별 정책이 공간으로 드러난 것. *사진출처: 서울 아카이브 http://www.museum.seoul.kr/archive/archiveView.do?currentPage=3&type=C&ty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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